6.25동란이맺어준건설과의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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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중학 5학년(지금의 대전고등학교 2학년)이던 1950년 여름이었다. 1학기 기말시험을 끝낸 어느 일요일 아침, 이인구 명예회장은 친구들과 유성온천의 한 대중탕에 들어가 쌓인 피로를 풀면서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온한 초여름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관리인이 들어와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외쳤다.


"국군 여러분! 속히 귀대하시기 바랍니다. 전쟁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사진 때는 오전 10시경. 새벽 4시에 발발한 6·25 전쟁소식을 6시간 가량 지나 처음 듣게 된 것이었다.직감적으로 심상치 않다고 느낀 이명예회장은 서둘러 옷을 걸쳤다. 친구들과의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쓸어내리며 학교로 뛰었다. 당시 이인구 명예회장은 학도호국단 중대장으로서 몇 차례 군에 입소하여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도 있었고, 그해 7월에도 현재의 둔산지구에 있던 보병 제2사단에서 군사훈련을 받기로 예정돼 있던 터였다. 학교에 배속된 장교의 굳은 표정에서 전쟁이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본대인 2사단에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전 채비를 하는 중이었으며, 이명예회장을 비롯한 학도호국단 간부들에게 대략적인 전황을 설명하고 비장한 각오가 필요함을 전했다. 가슴속 한구석에 남아 있던 '잘못 들은 것이길' 하는 일말의 기대감마저 사라지고 대신 가슴의 고동소리만 커져갔다. 처음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이명예회장과 친구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한 상황이므로 미성년자인 우리도 출전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각자 각오를 다졌다.
그러는 사이 전황은 급변하여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승만 대통령이 대전까지 밀려 내려왔다. 대흥동에 있는 도지사 관사에 임시 지휘본부를 설치했고, 평소 보지 못하던 고급 승용차들이 흙칠로 위장한 채로 대전 시내를 분주히 오가기 시작했다.학교는 이미 휴교령이 내려져 있었고 교사(校舍)와 운동장은 군사목적으로 점령되었다. 7월 중순에 이르러 포성이 대전 시내에까지 울려 퍼지는 상황이 되자 빨리 남쪽으로 피란 가라는 가두방송이 숨가쁘게 사람들의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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