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이인구 명예회장은 개인의 안위보다 나라와 지역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결단을 내린다. 김종필 총재의 부름으로 정계에 진출한 것이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아내 윤종설 여사도, 이인구 명예회장의 진심을 받아들여 선거 운동에 힘썼다. 그 결과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다. 이후 1996년 15대 국회의원으로도 재선돼 특유의 돌파력으로 각 분야에서 탁월한 국정 수행 능력을 발휘했다.
1998년 국정감사 때는 피감기관으로부터 정무위원회 베스트의원으로 뽑혔고, 여야의원들이 자체선정한 ‘98국감 20인’에도 들었다. 특히 1998년 6월 한국유권자운동연합에서 실시한 제15대 의정활동 평가에서 299명의 국회의원중 10명 안에 들어 활약상을 확실히 인정받았다.
국가와 지역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이인구 명예회장의 가치관은 계룡장학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1992년, 이인구 명예회장은 지역의 인재를 지원하는 계룡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까지 14,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54억여 원을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 사업, 삼학사비 중건 사업, 일본 백제문화유적탐사 사업,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 사업, 독도 우리 땅 밟기 운동, 유림경로효친대상 제정, 유림공원사생대회 개최 등 다양한 문화 역사 관련 사업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인구 명예회장은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지요. 돈을 못 벌면 기업이 아닙니다. 그러나 번 돈을 다시 사회에 환원시키는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인구 명예회장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 빛을 발했다. 이 명예회장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일본에서 귀국해 복구에 앞장섰다. 복구에 필요한 경비 전액을 부담하고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환경 전문가를 초청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기름유출 지역이 7개월 만에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2007년은 이인구 명예회장이 희수를 맞이한 해로 이를 기념해 이인구 명예회장은 사비 100억 원을 출연해 시민을 위한 공원을 조성했다. 우리나라 사계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는 유성구 봉명동의 유림공원이다. 공원 조성 이후 지금까지 유림공원은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대전의 대표 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더불어 이인구 명예회장은 대전시티즌 프로축구단 창단, 나라사랑 보금자리사업 후원, 희망나눔캠페인 후원, 메르스 대책 후원, 와병중인 예비역 위문금 후원, 유림뜰 조성·기부 등으로 공익실현에 앞장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