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당신의 숲에서 행복했습니다

충청의 거목 故 이인구 명예회장을 기억하다


‘이인구 명예회장님, 당신의 숲에서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지난 5월 17일 계룡건설 본사 사옥에서 이루어진 영결식에는 비통함과 함께 이인구 명예회장의 뜻을 되새기는 따뜻한 온기가 흘렀다.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이인구 명예회장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바탕으로 한 기업경영과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한 국정과 사회공헌 활동에 존경을 표했다.
넉넉한 숲, 유림(裕林)이라는 호처럼 이인구 명예회장은 대전 충청권을 비롯해 대한민국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일로매진(一路邁進) 정신으로 계룡그룹을 일구다

이인구 명예회장은 1931년, 대전 동구 효평마을에서 출생했다. 목은 이색선생의 20대손인 이인구 명예회장은 선대로부터 리더십,애국심을 물려받아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인정받았다. 일제 강점기 산촌의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뛰어난 자질로 충청권 최고의 명문 대전중고등학교에 1946년, 수석으로 입학했다.
5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 6.25전쟁이 발발했고, 이인구 명예회장은 1950년 7월, 부모의 걱정을 뒤로한 채 학도병에 자원 입대했다.
“국가의 개념은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전쟁이 나면 나이 든 몸이지만 전쟁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저의 국가관입니다.”
이인구 명예회장은 생전 인터뷰에서 자신의 국가관을 밝힌 적이 있다. ‘오로지 구국’. 1950년 당시 학도병에 자원 입대한 것도 그의 국가관 때문이었다.
최전선에서 전투에 임하던 이인구 명예회장은 미군 고문관의 통역병으로 근무하던 중, 18세의 어린 나이로 공병 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1951년에 최연소 장교로 유학단에 선발됐다. 미육군 고등 군사반을 졸업한 후에도 공병 장교로서 국가 방위와 국토 재건 사업에 동참했다.
이인구 명예회장이 계룡건설 합자회사를 인수한 때는 1970년 1월이다. 창립 초기에 자본과 인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실적을 쌓아 갔다. 1970년에는 우리나라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 개통의 주역으로 국토 재건 사업에 동참했다.
이인구 명예회장은 1978년 제60회 전국체전을 개최할 대전 공설운동장 준공을 계기로 계룡건설을 한 단계 도약시킨다. 공설운동장을 공사하던 회사가 도산을 맞는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중소기업이었던 계룡건설이 공사를 맡은 것이다. 이인구 명예회장의 열정을 앞세워 전직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24시간 3교대 근무를 해 공설운동장을 준공했다. 이를 시작으로 둔산 신시가지 조성, 충청은행 전산센터 건설, 대전 월드컵경기장 등을 건설하며 계룡건설은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룩했다.
현재 계룡건설은 1970년 출범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성장했다. 2010년 1월에는 창립 4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는 KR산업, 계룡산업, KR유통, 계룡장학재단, KR스포츠 등 계열사 포함 2천6백여 명의 직원을 둔 매출 2조 원대 계룡그룹으로 성장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다

국회 상임위 활동(15대 국회)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
계룡장학재단 장학금 전달
1988년, 이인구 명예회장은 개인의 안위보다 나라와 지역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결단을 내린다. 김종필 총재의 부름으로 정계에 진출한 것이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아내 윤종설 여사도, 이인구 명예회장의 진심을 받아들여 선거 운동에 힘썼다. 그 결과 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다. 이후 1996년 15대 국회의원으로도 재선돼 특유의 돌파력으로 각 분야에서 탁월한 국정 수행 능력을 발휘했다.
1998년 국정감사 때는 피감기관으로부터 정무위원회 베스트의원으로 뽑혔고, 여야의원들이 자체선정한 ‘98국감 20인’에도 들었다. 특히 1998년 6월 한국유권자운동연합에서 실시한 제15대 의정활동 평가에서 299명의 국회의원중 10명 안에 들어 활약상을 확실히 인정받았다.
국가와 지역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이인구 명예회장의 가치관은 계룡장학재단 설립으로 이어졌다.
1992년, 이인구 명예회장은 지역의 인재를 지원하는 계룡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까지 14,0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 54억여 원을 지급했다.
뿐만 아니라, 광개토대왕비 복제비 건립 사업, 삼학사비 중건 사업, 일본 백제문화유적탐사 사업,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 사업, 독도 우리 땅 밟기 운동, 유림경로효친대상 제정, 유림공원사생대회 개최 등 다양한 문화 역사 관련 사업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인구 명예회장은 “기업은 돈을 벌어야 하지요. 돈을 못 벌면 기업이 아닙니다. 그러나 번 돈을 다시 사회에 환원시키는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라고 인터뷰한 바 있다.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인구 명예회장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 빛을 발했다. 이 명예회장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일본에서 귀국해 복구에 앞장섰다. 복구에 필요한 경비 전액을 부담하고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환경 전문가를 초청했다. 그러한 노력으로 기름유출 지역이 7개월 만에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
2007년은 이인구 명예회장이 희수를 맞이한 해로 이를 기념해 이인구 명예회장은 사비 100억 원을 출연해 시민을 위한 공원을 조성했다. 우리나라 사계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는 유성구 봉명동의 유림공원이다. 공원 조성 이후 지금까지 유림공원은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대전의 대표 공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더불어 이인구 명예회장은 대전시티즌 프로축구단 창단, 나라사랑 보금자리사업 후원, 희망나눔캠페인 후원, 메르스 대책 후원, 와병중인 예비역 위문금 후원, 유림뜰 조성·기부 등으로 공익실현에 앞장서 왔다.
2006년 7월 14일 유림효친대상1회 2009년 6월 23일 유림공원 기자간담회

"넉넉한 숲처럼 너그러웠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촌음을 아끼며 달리면서 생각하고 뛰면서 일해 왔습니다. 숱한 과오도 있었고, 숱한 영광도 있었습니다. 오늘 이후도 비록 일하는 방법은 다를지라도 건강이 허락하는 시간까지 일벌레가 될 것입니다.”
이인구 명예회장은 2007년, 회고록 (일하는 보람으로 산다)를 발행했고 2015년에 추록을 발간한 바 있다. 회고록에서 이 명예회장은 위와 같이 고백했다. ‘일하는 보람으로 산다’라는 회고록 제목처럼, 이인구 명예회장은 기업경영과 지역사회공헌 활동 등에 매진하며 평생을 달려왔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이인구 명예회장은 수많은 공적을 인정받으며 우리나라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6.25 전쟁의 전공으로 ‘화랑 무공훈장’을 받았고, 나라에 대한 열정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또한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한국건축대상, 대전시민대상 등 300여 개 이상의 상과 감사패 수상이라는 뜻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이인구 명예회장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발자취는 ‘유림(裕林)’이라는 호로 축약할 수 있다. 넉넉한 숲처럼 넓은 마음으로 계룡그룹을 경영하고 지역사회를 돌본 이인구 명예회장의 삶은,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이어질 것이다.
“산간벽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숲을 좋아해요. 그래서 유림으로 호를 지었고 넉넉한 숲이라는 뜻입니다.
원시림처럼 넓고 우거진 숲은 내 생리에 맞지 않고 그저 구색이 잘 갖추어진 넉넉한 숲이 내 생리에 맞습니다. 나의 인생도 넘칠 정도로 많고 크지는 않지만 모자라지 않고 넉넉할 정도였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나의 인심도, 나의 기업도 그랬으면 합니다.” - 이인구 명예회장의 회고록 (일하는 보람으로 산다)

故 이인구 명예회장 약력

1945 대전동명초등학교 졸업 (27회)
1946-1952 대전중고등학교 졸업 (31회)
1952 미국 육군공병학교 고등육사반 과정 졸업
1964 충남대학교 법경대학 법학과 졸업
1986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최고 관리자과정 제2기)
1994 충남대학교 명예법학박사
2003 대전대학교 명예경제학박사
2003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철학박사
2004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국립극동대교통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2015 한밭대학교 명예공학박사
1970-1995 계룡건설산업(주) 회장
1975-1981 대전·충남 핸드볼협회 회장, 대전·충남 궁도협회 회장, 대전·충남 탁구협회 회장, 대전·충남 수영연맹 회장
1976-1982 재향군인회 충남지회 지회장
1978-1981 대전·충남 사격연맹 회장
1982-1988 대전상공회의소 회장(11·12대), 대전지역노사협의회 회장, 충청남도 한·일 친선협회 회장
1985-1993 충남대학교 총동창회 회장(18-21대)
1988-1992 제13대 국회의원(신민주공화당 대덕, 연기)
1988-1990 국회건설위원회 위원
1988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 신민주공화당 대전·충남지부 위원장, 신민주공화당 당무위원, 대전생명보험(주)설립추진위원장
1990-1992 93대전엑스포 특별위원회 위원
1991-1992 국회상공위원회 위원
1991-1992 민주자유당 당무위원
1991 대전생명보험(주) 명예회장(現 미래에셋 흡수합병
1992-2017 계룡장학재단 이사장
1993-1996 대한민국 헌정회 대전지부 회장
1995-2000 자유민주연합 대덕구 지구당 위원장
1995-1997 자유민주연합 대전시지부 위원장
1995-2000 자유민주연합 당무위원
1996-2001 계룡건설산업(주) 명예회장
1996-2000 제15대 국회의원 (한·일 의원연맹위원, 한·쿠웨이트의원 협회 회장, 한·중 의원협회 회원, 한·인도네시아 의원협회 이사, 한국동란참전의원 친목회 부위원장, 국회정각회 회원)
1996-1998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
1996-2000 국토의 효율적 활용에 관한 연구모임 회장
1996-1998 대전고등학교 총동창회장
1996-2005 ㈜대전프로축구단 명예회장
1996 96 예산결산 위원회 위원
1997 한보사건조사 특별위원회 위원
1997 97 예산결산 위원회 위원
1998 98 예산결산 위원회 위원
1998-2000 국회정무위원회 위원
1998-2000 자유민주연합 부총재
2001-2017 계룡건설산업(주) 명예회장
2002-2017 대전대학교 객원교수
2002-2017 KR산업 명예회장
2003 반부패 국회의원 포럼 고문
2003 한국학중앙연구원 발전후원회장
2007-2008 충청남도 유류사고대책위 자문위원
2008 ‘충청남도지’ 편찬위원
2008-2009 2009 안면도국제꽃박람회 범도민지원협의회 회장
2009-2010 2010 세계대백제전 범도민지원협의회 회장
2010 월남(月南) 이상재선생 기념사업회 고문
2010-2011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고문위원
2011 2011 금산세계인삼엑스포 범도민지원협의회 고문
1952 화랑 무공훈장
1978 국민훈장 동백장
1979 산업포장
1980 대통령 표창(수해복구)
1986 국무총리 표창(아시안게임)
1992 한국건축대상(한국건축가협회)
1998 새마을금고 대상
1999 산업포장
2000 안전경영대상
2000 동탑산업훈장
2000 석탑산업훈장
2002 대통령표창
2003 기업경영대상
2005 제29회 월남장 수장
2007 자랑스런 대전인상
2009 대전시민대상
2010 자랑스런 충청인상
2010 산업포장
2010 40년이상 향토기업 감사패 외 300여 개